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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 [휴먼즈오브글로벌케어] 해외사업팀 윤태환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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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단법인)글로벌케어 작성일20.10.15 조회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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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먼즈 오브 글로벌케어

Humans Of Global Care

-해외사업팀 윤태환 대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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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케어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휴먼즈 오브 글로벌케어" 세 번째 시간으로 해외사업팀 윤태환 대리를 만났습니다.

그와의 솔직담백한 인터뷰를 통해 NGO에서 일하며 느끼는 희노애락을 살짝이나마 간접경험해보았습니다.  

 

 

김시온 (이하 킴): 자 그럼 저희 인터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워밍업으로 본인에 대한 가벼운 질문들을 드릴 건데, 혹시 태환쌤 별명 있으신가요? 

 

윤태환 (이하 윤): 별명, 딱히 그런 건 없고 아내가 가끔 저 부를 때 윤태봉? 그 정도? 

 

킴: 아 윤태봉씨. 매우 큐트하군요. 쌤 Mbiti가 뭐였죠…? IS…

 

윤: IS에 F가 들어갔던 것 같은데…. ISFJ였었나? 

 

킴: 아아, 그거 맞는 것 같아요! 현모양처 스타일. (웃음) 쌤 혹시 그러면 혼자 하기 좋아하는 취미 있으신가요? 서진이 생기기 전이라도…

 

윤: 원래 취미생활로 즐기는 게 영화보기였는데 결혼하고 거의 못 하게 됐죠 (웃음) 인생 영화는 글래디에이터에요. 하여튼 영화 보는 거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핸드폰 웹툰? 모바일 게임? 

 

킴: 아아 하긴 통근시간이 워낙 또 기시니깐. 쌤 그러면 대학교 때 전공이 뭐셨어요?

 

윤: 학부 때 전공은 생명과학과였고, 복수전공했어요. 다른 하나는 영어 영미문화. 

 

킴:영어영미문화이요? 쌤 문과와 이과를 전부 다 섭렵하셨군요. (웃음) 

 

윤: 그게 이과만 하는게 너무 지겨워서… 그래서 문과 쪽 뭔가를 하려고 생각하다가 영어공부나 하자, 해서 고른 게 영어영미문화과였어요. 

 

킴: 신기하다. 생명공학이랑 영어영미문화의 조합은 또 처음이네요. 아 그럼 혹시 교환학생도 이것 때문에 가셨던 거에요?

 

윤: 교환학생은 그냥 가고 싶어서 갔었죠. 

 

킴: 언제 가셨었죠?

 

윤: 대학교 3학년 끝나고 갔었죠, 1년 동안. 

 

킴: 아, 그럼 마지막 1년을 미국에서 보내신 거군요. 

 

윤: 네, 아무래도 영어영미문화 학과니깐 들을 수 있는 수업들이 많았죠. 

 

킴: 아아, 인생의 황금기라고 하셨던 그 UC Davis.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그때 얘기하시면 너무 행복해 보이셔서. 

 

윤: 아, 너무 좋았었죠 (웃음) 진짜 재밌었는데.

 

킴: 돌아가실 수 있다면 돌아가시고 싶어요? 

 

윤: 그때로? 음, 돌아가면 미국에서의 시간 말고 그 외의 시간도 또 보내야 하잖아요. 그러면 싫어요. (웃음) 돌아간다면 딱 그 미국에서의 1년만 다시 경험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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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그러면 대학원에서는 어떤 공부하셨던 거에요?

 

윤: 대학원은 이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가서 보건학 전공. 그리고 세부 전공은 역학. 

 

킴: 오오. 저 서울대 대학원 졸업생이랑 처음 얘기해봐요. (웃음) 

 

윤: 대학원은 그래도 보건대학원은 그래도 문턱이 좀 높지 않은 편이에요. 

 

킴: 그럼 보건학 공부는 꼭 하고 싶은 이유가 있으셨어요? 

 

윤: 음, 그러니깐 보건학을 하고 싶었던 별다른 계기는 없어요. 한창 학부 때 진로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교환학생을 갔을 때 어떤 정신과 전문의 의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미국에서 보건학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대뜸. 제가 그때 당시에 Public health 얘기를 들으면서 이게 막 엄청나게 많은 길이 있고 막 그런 얘기를 들으니깐 괜찮아 보이는데? 이런 막연한 생각을 했던 거죠. 근데 사실 보건학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그러던 찰나에 지금 모로코 지부장님을 소개받았죠. 그분이 존스 홉킨스에서 보건학 공부하셨으니깐 물어보라고. 그래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분도 난감하셨던 거죠. 보건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킴: 아, 그렇죠, 까다로우셨을 것 같아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윤: 맞아요, 그런데 실상으로 이게 어떤 길을 걷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는게 되게 힘들어요. 그래서 그분이 조언을 해준 게 보건 관련된 인턴을 아무거나 해보라고. 그래서 사람인에 들어가서 찾았어요, 보건 관련해서 뭐가 있는지. 그래서 그때 딱 눈에 띄었던 게 FIJI(피지) 결핵 사업 인턴 뽑는 거였어요. 그것도 이제 피지라는 말에 굉장히 매료됐었고, 또 그때가 졸업하고 집에 있었을 땐데 엄마랑 싸우고 열 받아서 아, 이 집을 떠나야겠다, 이렇게 지원하게 돼서 그렇게 간거죠. 거기서 인턴하면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하고 보건대학원 산업보건학과 석박사를 하신 분 만나서 보건학 얘기도 많이 들을 기회가 됐었죠. 그래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지원해서 공부하게 됐죠. 

 

킴: 그러면 대학원 졸업 후에 어떻게 글로벌케어에 어떻게 일하게 되신 거예요? 지금 몇 년 차로 일하고 계신 거죠?

 

윤: 제가 2017년에 졸업해서 5월부터 방글라데시에 있었어요. 3년이 넘은 거죠, 글로벌케어와 함께한 지. 보건대학원을 졸업하고 뭐할까 하다가 길이 두 개예요. 연구 아니면 사업. 연구 쪽은 자신이 없었어요. 사업이 조금 더 나은 것 같아서 이쪽으로 하려다가 모로코 지부장님을 통해서 글로벌케어를 소개받았어요. 그래서 글로벌케어 본사에 와서 대표님의 화술로 설득을 당한 거죠. 마케팅 당한 거예요 (웃음) 대표님이 방글라데시 램 병원은 파라다이스다, 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정말 힘들었어요. 물론 1년 후에 어떤 의미에서 파라다이스라고 하셨는지 조금은 이해를 했는데 그전까지는 진짜 싫었어요. 하긴 사실 대표님의 말에 설득된 건 아니었고 대표님 말에 아내가 설득됐어요. 아내가 단기선교를 가고 싶어 했는데 아내를 상담해주던 목사님이 남편 직장과 관련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상담해주셔서 일이… 이렇게 됐죠. 사비 들여가면서 무보수로 갔어요. 방글라데시에. 저는 사실상 선교사처럼 후원금을 받아서 간거죠. 대신에 후원금이 일정 금액에 못 미치면 글로벌케어에서 채워주는 거로. 그때는 월 100만 원이 목표였어요. 근데 그게 매번 못 미쳤어요. 그 부분을 글로벌케어가 메꿔서 준거죠. 그래서 어쨌든 그렇게 2년 있고 귀국 후에 자연스럽게 글로벌케어에 오게 된거죠. 

 

킴: 귀국을 2019년에 하신거에요? 

 

윤: 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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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그러면 어찌됐던 보건의료 NGO에서 일을 하시게 된거잖아요. 이 일을 하시면서 나름 보람차다거나 나름 좀 뿌듯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웃음)  

 

윤: 음……이제 또 보건학이라는 거 자체가 성과를 빨리 보기 힘들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진정한 성과는 측정하기 어려워요. 진정한 성과는 그들과 더불어 살면서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굳이 보람이라고 말하자면 사람들이랑 인터뷰할 때. 현지에서. 우리의 고객 인터뷰할 때 그들의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고 느껴질 때는 아, 이게 쓸모없는 일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는거죠. 

 

킴: 아, 수치로 잘 환산되지 않는 것들…

 

윤: 예, 그렇죠. 그래서 그런 게 좀 있고… 근데 이게 보건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연관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보건은 보건만 건드리지 않아요. 그리고 보건활동의 대부분이 인권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우리가 건강상태를 증진시켜준다는 것은 건강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거거든요. 단순히 건강권리를 찾아주는 것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지위 자체도 바꿀 수 있어요. 이런 여성보건사업이 대표적인 예인 것 같아요. 여성보건사업은 만약에 어떤 여성이 출산 중의 문제로 인해서 요도와 질에 구멍이 나서 질로 소변이 새는 그런 질병에 걸렸다고 해요. 그러면 몸에서 냄새가 많이 나거든요. 이제 그게 저주라고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이 쫓아낸단 말이에요. 근데 보건활동을 통해서 이게 저주가 아니고 질병이고, 적절한 출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지거든요. 남편도, 아, 문제가 생겼던거구나, 그러고 그냥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가면 되는거에요. 이걸 몰랐다면 여자는 마을과 가정에서 쫓겨나서 친정에 가서 평생 결혼도 못하고 살았겠죠. 그런데 이걸 교육을 통해서 알게 된다면 쫓겨나지 않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거죠. 이거는 단순히 보건이 아니고 이 사람의 인권과 연관이 있는거에요. 이런 곳에서 여성건강사업을 실행하면 이들이 건강해지는 만큼, 이들의 건강권리가 확보되는 만큼 결국 이들의 인권이 증진되는 거랑 연결되는 게 많아요.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죠. 이런 가치들인거죠. 결국 NGO에서 일을 하면서 보람이기보다도 더 이 일이 중요하구나를 느낄 수 있는 점은 이 일들이 가치를 추구하는 일들이거든요. 이 세상에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더 인간다워진다고 생각해요. 무형의 가치라는게 뭐 도덕, 신뢰, 정직, 친절, 평등, 이런 게 있겠죠? 그런데 유형의 가치를 추구하는게 많을수록 그 사회는 편리해질수는 있어도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봤을 떄 이 NGO에서 일하는 분들은 유형의 가치를 쫓아가는 사회 속에서 대놓고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인거죠. 이게 이 사람들은 이 세상의 밸런스를 맞추는 사람들인거에요. 무형의 가치는 말 그대로 형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나누면 나눌수록 NGO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추구한다면 이게 사회에 퍼지면,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서 활성화가 되면 거의 뭐 무한대로 끝이 없이 증식할 수 있는거죠. 이런 것들이 사람을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고, 내 자식들에게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줄 수 있고,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는 단체가 NGO와 종교단체인거죠. 그런 면에서 이 일이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은 해요. 

 

킴: 와, 근데 얘기 들어보면 본인은 이 일 하면서 딱히 보람이나 재미는 없다고 하시면서도 이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으신 것 같아요 (웃음) 

 

윤: 근데 이 일의 치명적인 약점이 (웃음) 불안정해요. 보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 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괜찮다고 해도, 불안정해요. 왜냐하면 이게 빅도너 사업을 못따봐요. 그러면 누군가는 나가야해요 (웃음) 그 말은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업을 늘 따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있는거에요. 

 

킴: 너무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잘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혹시 마지막으로, 이런 보건의료라던가 NGO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윤: 이런 실질적인 얘기들을 해주고 싶죠. 일단 NGO 쪽 보건의료 쪽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보수적인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수가 상대적으로 낮고 불안정하기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해야 할 것 같아요. 샐러리 문제를 반드시 가볍게 여기면 안 될 것 같고. 가정을 이루고 미래 생각을 한다면 그 부분을 분명하게 알고, 그다음에 확실히 가치에 대한 일이기 때문에 가치에 대한 사명감이 있다면 덜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도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공부해야 할 것들이 끝이 없다는 것. 

 

킴: 너무 감사합니다.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나에게 글케란?

 

윤: 밥줄. (웃음) 

 

킴: 네, 긴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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